“ 이젠 그쪽이 들을 차례죠. ”
외관
─ 녹음과 붉음이 서린 탁한 머리칼은 부산스럽게 뻗쳐 제대로 관리했다는 느낌과는 거리가 멀었다. 허나, 이제는 그게 길고 길어 발끝에 닿을 정도니 느슨하게 땋아 정리하는 것이 일상이다. 보는 기준 오른쪽 머리칼을 굵게 땋아 뒤에서 끈으로 정리하고, 얇게 땋은 머리카락 여럿, 큼직하게 땋은 머리카락 하나를 두어 나름 정리라면 정리를 해보았다. 남이 보기엔 역시 정신 사납다, 는 말이 절로 나오지만. 귀 언저리 근처엔 이전과 같이 풍성한 깃털 장식을 달고 다녔다. 무슨 깃털이고 하면, 여전히 어린 독수리의 깃털이라 말한다. 그것도 저가 기르던 독수리의 깃이었다고, 이제는 말하기도 한다.
─ 자안의 시선은 항상 보기 좋게 굽어져 있었지만, 빛을 받으면 푸른 빛깔이 여실히 드러났다. 이제는 그 푸른 빛깔이 더욱 도드라져 보였지. 어쩌면 새벽 하늘의 색을 닮았을지도 모르겠다. 맑은 색은 여전히 보는 사람마다 단연 맑다고 말했다. 피부는 또 어떻던가. 이 또한 밝다. 잔 상처가 있지만, 없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유랑하는 사람에게는 명예로운, 일상인 상처일 뿐이다.
─ 겹겹이 껴입은 천 옷은 유목민의 특징이다. 천마다 작게, 혹은 크게 나 있는 색색의 자수들은 그의 출신을 드러내는 것과 같다. 간혹 금속 장식을 달아둔 탓에 짤랑이며 흔들리는 소리가 컸다. 무심코 고개를 돌리면 다들 유목민이구나, 하고 말할 복장이기도 했지.
─ 그래도 겹겹이 입은 옷 안쪽으로는 단촐하기 짝이 없는 복장이 자리 잡고 있었다. 언제 기온이 떨어질지 모르고, 햇볕을 계속 받아야 하는 게 유목민이니 별 수 있으랴. 가리는 게 일상이고, 품이 넓게 입는 것도 일상이다.
─ 가려진 손목과 발목 안쪽. 목 안쪽에는 태양과 땅을 뜻하는 타투가 새겨져 있다. 그리고 쇄골 부근에는 새를 뜻하는 타투가 새겨졌지. 낡은 귀걸이 하나가 귀에 자리매김 한 것도 같다. 덕분에 비어있던 귀에 흔적이 남았다. 그리고 가끔 벌어진 천 틈새로, 등쪽에도 큰 타투가 새겨져 있는 듯 보였다.
성격
나른한 배덕자 ㅣ 융화 ㅣ 뿌리의 기원 ㅣ 갓 피어난 것들 ㅣ 넉살 좋은
이 땅, 이 세상. 내 발아래에 있는 아득한 대지.
이 대지에 발을 내딛기 위한 한 걸음을 꽃 피웠으니.
걷는 걸음마다 초목이 숨 쉬고, 노래하리라.
나는 너로 하여금 숨을 쉬고, 대지에 뿌리 내리리라.
그의 삶은 항상 바람과도 같았다. 순풍이 불면 떠올라 날아가고, 바람이 그치면 그 자리에 머물며 뿌리를 내렸다. 이제 막 피어난 민들레 홀씨처럼 흩날리는 삶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그 어떤 자리에도 쉽게 뿌리를 내렸다. 원래부터 그곳에 터를 잡은 초목처럼,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익숙한 존재처럼.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 있어서 자리란, 위치란, 마음이란 언제든지 떠날 수 있으면서도, 항상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흔적과 같았다.
그러면 그의 뿌리는 무엇일까. 그의 뿌리는 언제나 자신의 고향이었고, 자신이 나고 자란 대지였다. 들푸른 초원, 아득한 평야, 먼 곳까지 보이는 녹 빛 융단. 그는 그 모든 것을 사랑한 사람이었다. 그의 상냥함은, 안온함은, 평온은 바로 그곳에서 흘러서 들어왔다고 해도 무관하리라. 내 뿌리의 성질, 내 근원을 억누르고서라도, 기원을 내려놓고서라도 사랑하고 싶은 풍경. 누군가는 물을지도 모른다. 네가 정녕 독초로 태어났다고 하여도, 그 땅에 뿌리내리면 꽃을 피울 것 같냐고. 그러면 샤와르는 답할 것이다. 나, 이 땅에 뿌리 내리기 위해 내 것을 쥐지 않았노라고.
여유는, 손에 쥔 것 하나가 씨앗이 되어 새싹으로 피어났을 때 그는 그 누구보다도 충족감을 느꼈다. 더는 바라는 것이 없는 삶. 애초에 무언가를 바라거나, 그것에 대한 욕구가 각별했었던 것도 아니니 더더욱 그럴지도 모르겠다. 아니, 없다고 말해도 좋을까? 그가 가지고 있었던 본성을, 욕구를 아무 것도 없었노라 치부해도 되는 것일까? 샤와르는 언제나와 같이 웃을 것이고, 그것이 제 기원을 억누른 결과물임을 알고 있다. 그리고 결실을 맺었다. 그걸로 충분했다.
성격의 기반은 이전과 크게 다를 바 없으나, 세월이 흘러 나무가 번성하듯 그 또한 그런 여유와 너그러움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제 자신을 죽인 채 나무 그늘만 제공하느냐, 이제는 제 싫은 짓을 구태여 하겠단 모습을 보이진 않았다. 싫어요, 라고 단칼에 말하는 모습 속에 서린 서늘함과 가벼움은 결국 그가 억누르던 본성의 편린과도 같았다.
삶의 편린, 피어나는 새싹, 지는 낙엽.
그 무엇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음에도,
보는 것이 많아 흘리는 것도 많았다.
학자
그자, 녹의 기록지의 저자라지?
환상종의 정보를 기록한 그것 말인가?
그래, 그 녹의 기록지의 저자.
혹자는 녹의 서라고 부른다고 하더군.
아그립냐에서 주최하고 운영 중인 환상종 연구 학회 소속의 학자로, 햇수로만 따지면 어림잡아 10년은 훌쩍 넘는 세월을 학자로서 살아오고 있다. 물론 학자라 하여 한곳에 묶여서 연구만 하는 것은 아니며, 항상 베델 전 지역을 오가면서 환상종 연구를 멈추지 않고 있다. 그가 아그립냐에 머물 때는 모아둔 자료를, 직접 쓴 수기를 학계에 발표할 때가 대부분이리라.
그가 발표하고 편찬한 녹의 서는 환상종의 생태 및 정보를 수집, 기록한 내용으로 학회를 통해 적법한 절차를 거쳐서 통과시킨 기록물이자, 가르멜 연합을 통해 정식으로 유통되고 있는 백과전서와 같다. 해당 기록물에는 이전, 도감이라 불리우던 내용의 자료를 발췌하여 사용하였으나, 이는 일종의 관찰지에 가까우며 도감보다도 설명 및 내용이 풍부함을 장점으로 꼽고 있다.
정령사
그가 흙 위에 발 붙이고 이는 이상, 이 땅에 흙이 존재하는 이상,
그는 땅 위의 정령들의 도움을 받아 초목을 피워낸다.
약을, 독을, 땅에 깃든 재생과 순환을 ,
제 몸을 지표 삼아 섭리를 비튼다.
─ 맹약의 영향인지, 신체의 통각이 약해졌다.
통각에 약해진 만큼 추위도, 더위도 크게 신경쓰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마치 신체의 일부분이 진흙이 된 것처럼 말이다.
기타
녹의 서, 녹의 기록지.
─ 아그립냐에서 주최하고 운영 중인 환상종 연구 학회를 통해 정식으로 통과, 유통의 절차를 거쳐서 궁극적으로는 가르멜 연합을 통해 유통되고 있는 백과전서로, 현재는 가나안을 제외한 베델 전 지역에 유통되고 있다. 기록지의 장점을 꼽는다면은 이전에 도감이라 불리던 것의 자료를 발췌하여 적극 활용, 이후 수기로 추정되는 지필 방식을 통해 환상종의 생태 및 정보를 작성하여 풍부한 내용을 보유한 점을 꼽을 수 있으리라. 초기에는 저자 미상으로서 유통되었으나, 추후 내용을 보완하며 지속적인 삽입이 이루어진 이후에는 어쩔 수 없이 샤와르, 라는 이름 한 문장이 기록지의 안쪽, 최하단에 기록될 수밖에는 없었다.
─ 샤와르는 해당 저서를 작성하기 위하여 저와 맹약한 환상종, 엔키두의 능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으며 그중에서도 ‘땅의 목소리’를 듣는 힘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땅 위를 살아가는 환상종들의 생태를 수집하기에 이르렀다. 적어도 땅 위에 사는 환상종에 한해서는 그가 기록한 기록물에 거짓은 없다고 봐도 무관할 정도의 말을 들을 만큼의 세밀함이 겸비되어 있었다. (혹자는 바다의 환상종을 기록할 적엔 청의 서라고 지을 셈이냐는 우스갯소리를 내뱉었으나, 정작 그 말을 멀리서 들은 샤와르는 내가 물속에 들어가서 조사할 수도 없고 어떻게 하겠어!, 라고 말하며 그 말을 한 학자의 정강이를 걷어찼다는 소문이 있다.)
─ 가르멜 연합을 통해 정식적으로 유통하게 된 이후, 가르멜 연합에서 보유한 도감 관련 정보 또한 차용하여 내용을 보충했으며, 현재에 이르러서는 거의 완성본이라 불려도 무관할 정도의 기록지가 완성되어 따로 추가되는 내용은 없다시피 했다. 간혹 샤와르 선에서 관찰 기록지와 같은 내용이 적히기는 했으나, 학회를 통해 보고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 판단되었는지 개인 수기로 마무리 짓고 자료를 쌓아놓는 것에 그치는 것도 꽤 많다는 풍문이 있었다.
─ 해당 서적에 관해서는 많은 얘기들이 있었으나, 일부는 그 누구보다도 섬세하게 환상종의 정보를 기록했다고 말하나, 일부는 환상종의 목줄을 잡는 사냥꾼의 사냥 일지와 같다면서 혀를 차기도 했다. 허나 현 인류에서 그것이 많은 이의 목숨을 구할 수단이었음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리라.
─ 녹의 기록지라는 이름에 맞게 표지는 항상 녹빛을 띄고 있으며, 책 띠에는 목각 장식과 더불어 책 뒷면에 작은 토기 인형 마크를 새겨두는 것이 특징적이었다. 그게 맹약자가 쓴 책이며, 샤와르의 작품임을 아는 자는 자연스레 그 마크가 그의 환상종, 엔키두를 뜻하는 것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 연합을 통해 환상종에 대한 기록이 필요할 경우 응하고 있으며, 이 경우 날아온 파발을 통해 행선지를 정한 후 이동하는 경우 또한 적잖게 있었다. 저가 조사할 수 없는 환상종에 한해서는 지금껏 조사했었던 환상종의 정보들을 통해 유추 혹은 자문을 구하기 위한 방문을 요청받았으며, 샤와르는 때에 따라서 거절하기도 했으나 대부분은 그 파발에 응해 걸음을 옮겼다.
16년의 기록.
─ 삶의 대부분을 유랑에 바쳤고, 유랑을 하면서 베델 전 지역을 돌아다녔다. 이때 돌아다닌 경험 및 습득한 정보를 토대로 녹의 서가 탄생했으며, 본인 왈 이럴 생각은 아녔는데 적다 보니 재밌었다─ 라는 우스갯소리를 뱉었다는 말이 있다. 진실이 어떤지는 본인에게 물어보아야만 하겠지만.
─ 유랑하면서 발길이 닿는 곳, 치료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가 있는 곳이라면은 어디든지 향해 도움을 건넸으며, 딱히 무언가를 알리고 싶지도 않고, 티를 내고 싶지도 않았기에 치료하고서 소리 없이 사라지는 것을 반복했다. 덕분에 몇몇 도움을 받았던 자들이 녹음을 몰고 다니는 자가 사람을 치료하고 바람처럼 사라진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추후, 그 사람이 녹의 서를 만들었음이 알려지면서 녹의 치료사라 부르는 경우도 있었다.
─ 자신이 모아 온 정보를 다른 사람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가공할 필요가 있음을 느끼고 아그립냐에 장기간 거주, 그때 아그립냐에서 오랜 시간 환상종을 연구하고 있던 학회와 연이 닿을 일이 있어 그곳에서 공부를 하며 학자가 되었다. 그나마도 장기간 같은 곳에 머물고 싶진 않다며, 미친 척하고 반 년 동안 몰두해 결과물을 내는 기행을 낳기도 했다지. 지금 떠올리라고 한다면은 책은 끔찍해, 라고 딱 잘라서 말할 만큼 평생치 책을 다 읽었다며 진절머리를 냈다. 학회에 소속된 학자들은 모두 자신의 스승 격으로 보고 있으나, 스승님이라고 부르라고 하면 그 꼰대들, 하고 말했다가 입을 다물었다.
─ 년에 한 번, 혹은 몇 년에 한 번쯤 돌랄에 돌아갈 적마다 얼마나 나태하게 굴었는지, 전쟁 준비로 날이 선 이 분위기에 참으로 안 어울린다며 한 소리를 듣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뉘인, 잔풀처럼 살아온 부족은 그를 기꺼이 받아들였으니 보름 내지 한 달을 내리 놀다가도 가까이에 있다는 둥, 근처까지 왔다는 둥, 같은 이해 못 할 말을 내뱉으며 또 바람같이 사라지길 반복했다. 추후 이 행위가 녹의 서가 기록된 환상종에 대한 얘기였음을 눈치챈 건 조금 더 먼 시일이 지난 뒤의 일이었으리라.
─ 올족이 머무는 매장지에 새하얀 꽃을 솜처럼 뿜어내는 나무 여러 그루가 심어졌다는 소문이 들렸다.
─ 다양한 약초를 더욱 폭 넓게 다루기 위해 전 지역의 약학과 의학을 공부하는 것 또한 빼놓지 않았다. 구하고 싶을 때 구하지 못하면 아쉽잖아요, 가 이유라고 하지만 그런 것치곤 꽤 많은 시간을 할애했지. 여유를 즐기고 싶다는 투로 말하면서도 단 한 번도 소홀히 여긴 적은 없었다.
─ 환상종에 대한 다른 이들의 수기 및 정보, 목격담, 문헌 등을 통해 정리해둔 문서 또한 있었으나, 이는 퍼뜨리지 않고 제 품안에 둔 채 기록을 늘려갔다. 이유를 물으면,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또한 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때문에 종종 하늘에 속한 환상종도, 바다에 속한 환상종도 적혀 있었으나 모든 게 두루뭉술할 뿐이었다. 심지어 이름이나 형태조차 제대로 적히지 않은 것을 두고 문서라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 항상 바람처럼 여기저기, 온갖 곳을 돌아다닌 탓에 그야말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돌아다녔다. 누가 묻기를, 환상종이 대지 속성이라 땅을 걸으면 뭐, 한 걸음에 동쪽 끝에서 서쪽 끝으로 갈 수 있소? 라고 물어볼 정도였다고.
올(УЛААН)의 부족.
─ 그들이 지나간 곳에는 항상 흙먼지가 인다고 하여, 흙먼지족이라 불리는 경우가 잦다. 자신들 또한 올족이란 이름 앞에 흙먼지를 언급하는 경우가 잦으니, 올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고 흙먼지만 기억하는 자들 또한 더러 있었더랬다. 그들에게 지키는 가장 최상의 예의란, 흙먼지를 몰고 온 땅의 부족이라 지칭하는 것. 감히 이 땅 아래 선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최상의 찬사라 지칭하고 있다.
─ 흙먼지족이라 불리는 만큼, 이들은 항상 초원을 유랑하며 목축지를 도는 유목민의 삶을 산다. 사람의 발에서 흙먼지가 일고, 그들을 따라 걷는 소와 염소, 양들의 발굽에 의해서도 흙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오른다. 다른 부족과 연락을 주고받고자 독수리를 키우는 자들 또한 더러 있으며, 독수리의 먹이는 저들이 기르고 있는 가축을 내어놓는다.
─ 부족장은 야브강ЯВГАН. 부족장의 자리는 혈연을 따라 대물림되지는 않으나, 대체적으로 혈연을 따라 되물림되는 편이었다. 예외적인 경우는 부족장이 물러날 나이가 되었음에도 혈족 중에 성인이 된 자가 없었을 경우인데, 이때는 다른 자를 부족장으로 추대해 부족의 순리에 따랐다. 야브강의 유일한 혈족인 나란НАРАН의 나이가 어려, 다른 이가 부족장이 되는 것이 아니냔 말이 나온 적이 있었다. 이제 막 다섯 살이 된 아이가 부족의 미래를 이끌어갈 순 없지 않는가.
─ 그 당시 성년 근처였던 모든 부족민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야카? 성미가 급해. 사바하? 가축을 잘 돌보지 못해. 미와? 상냥하지만 강단이 없어. 그러면은… 샤와르? 그 말에 모든 부족민들이 웃었다. 샤와르가 부족장이 된다면 하루에 한 번 모든 부족민들이 부족장의 장난을 견뎌야 하는 규율이 생기는 것이 아니냐고 말이다. 사람들은 다들 손사래를 치며 야브강이 오래토록 부족장의 자리에 머물다가 나란에게 부족장의 자리를 물려주길 빌었다. 정작 그 얘기를 들은 샤와르 또한 자신은 부족장과 아무런 연이 없는 사람일 것이라며 어깨를 으쓱였지. 볕이 따사롭던 해, 지나가던 우스갯소리였다..
─ 혈연으로 묶이지는 않았으나, 나란은 샤와르를 잘 따랐다. 차기 부족장이 장난치길 좋아하는 샤와르를 따른다니,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었지. 하지만 갓난아이였을 적부터 배다른 동배처럼 챙겨주고 예뻐했으니, 다들 샤와르가 장난을 덜 치라고 할 뿐 둘이 형제처럼 지내는 걸 만류하지는 않았다. 부족장이었던 야브강 또한 종종 샤와르에게 나란을 맡기기도 했으니, 영락없이 형 취급을 당한 셈이기도 했다. 간혹 샤와르가 아이를 보는 게 무섭지 않으십니까, 라고 다른 부족민이 물으면 야브강은 “샤와르를 두려워한다면은 우리가 걷고 있는 대지가 언제 꺼질지 두려워하는 것과 같소.” 라고 답하는 것으로 모든 말을 일축시켰다.
─ 올족은 모두 자연의 흐름을 따라 나부끼는 초원의 잔풀과 같다. 그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규율은 오로지 하나, 나로 하여금 타인을 보고, 타인으로 하여금 호흡하여 삶을 영위하는 것. 이 땅 만물, 모든 곳에 깃든 삶과 생을 아끼고 어여쁘게 여기라고 가르치는 것과 같다. 올족은 부족 전체가 애니미즘 그 자체를 배우고 따르기도 하면서, 또한 따르지 않는 것과 같다. 마치 흙에 대고 너희가 흙이냐고 물으면 흙이지만, 구태여 흙이라고 지칭할 이유가 무엇이겠냐며 답하는 것과 같다. 다소 난해한 말이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은 그 무엇에도 연연하지 않고, 자신들이 아우를 수 있는 것이라면 순리이겠거니 하고 받아들인다는 뜻이었다.
─ 올족이 지향하는 것은 융화다. 이건, 화합도, 평화도 아니다. 들판의 초목이, 잔풀이 제각기 하나의 풀처럼 보이지만 뿌리가 얽히고 얽혀 하나가 된 것처럼 되길 바라는 것이었지. 환상종 또한 마찬가지다. 하지만 대항조차 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녔다. 유랑하는 이들답지 않은 전투력을 가지고 있으나, 드러내는 법은 없다. 샤와르는 그 중에서도 활을 쏘는 솜씨가 출중했으며, 여러 나무를 엮어서 만든 복합궁을 사용했다. 화살은 가능하다면 회수를 기본으로 하나, 그것이 불가능할 경우 화살 끝에 달린 깃만 회수했다.
─ 가끔, 십 년에 한 번쯤 약 한 해를 한 자리에 머물며 제를 바칠 때가 있다. 이때 제를 바치는 대상은 자신들이 살아가고 있으며, 발을 디딛고 있는 대지를 향해서다. 이때 쓰이는 땅은 더는 초원을 유랑하지 못하는 올족의 이들이 기거하고 있는 땅에서 이루어진다. 제를 바칠 때 빼고는 방문하는 경우가 희박하니, 올족에게 있어서 기거하는 땅은 매장지라 불리기도 한다. 초원의 잔풀처럼 살아가는 그들이지만, 죽을 때는 꼭 그곳으로 돌아와 땅에 묻혔으니 그리 불릴 법도 했다. 머물러 있는 이들도 죽음을 목전에 둔 이들, 그들을 돕는 가족 몇이 전부였으니 오죽했을까.
─ 죽은 자는 생전에 기르던 독수리 깃털 하나, 목축의 뼈 하나를 가슴팍에 올린 채 땅에 매장된다. 자연의 순리, 이치, 이 모든 것은 땅이자 하늘로 돌아감을 알리기 위함이다. 간혹 화장을 원하는 자가 있을 경우, 가장 잘 키운 목축 하나를 같이 공양해 불태운다. 이때 남은 재는 땅에 묻지 않고 바람에 날려 보낸다.
─ 부족 내에서 목축의 상처를 치료하고, 부족민들의 건강을 책임진 것도 샤와르였다. 넉살 좋은 성격은 병자가 있는지, 없는지를 헤아리는 행동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고 누군가는 생각했을 것이다. 사실 그와는 크게 상관없는 천성이 가깝지만 말이다. 약학과 의학은 혈족을 통해 내려오며, 이는 찬트와 샤머니즘… 즉, 애니미즘과도 연관이 있다. 땅에서 난 것으로 땅 위의 것을 치료하기에, 치료할 수 없는 상처 또한 생의 섭리라 여기며 고요한 끝을 맞이할 수 있게끔 돕는다.
본래 그의 부모였던 아당카와 칸자의 몫이었으나, 둘이 매장지의 환자 곁으로 간 뒤에는 오롯이 유랑하는 올족의 건강을 책임지는 것은 샤와르의 몫이었다.
─ 그가 맹약자가 되었을 때, 부족민들은 여타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였다. 단지, 어찌 그리 쉽게 목숨을 내어놓으려고 하였냐면서 타박했다. 애정에 따른 질타였던 것이다. 샤와르는 그저 웃었다. 그 대신, 땅으로 꺼진 이들은 어찌 할까요? 라고 물었지.
─ 한 해가 지나, 매장지에 머물고 있던 부모님이 다시 유랑의 일원이 됐을 때, 그는 미련없이 떠나겠노라 말했다. 마치 바람같은, 남긴 것 하나 없는 잔풀 같은 떠남이었다.
─ 10년이 흘렀을 무렵, 나란은 차기 부족장 소리를 듣게 되었고 올족은 그 선언에 일체 일언반구하지 않았다. 샤와르는 그 소식을 11년째가 되었을 때 들었으며, 앞으로 부족을 이끌게 될 나란 앞에 무릎 꿇고 내 앞에 펼쳐질 새로운 흙먼지의 시작을 봅니다, 하고 정중한 인사를 건넸다. 인사가 끝난 뒤 나란은 형이 그럴 줄 몰랐다며 아쉽다는 티를 냈지만, 샤와르는 그저 웃으며 나란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는 것으로 대신했다.
─ 저가 기르던 독수리, 람윗의 깃털을 모으고 모아 만든 장식은 조금 더 풍성해지고 많아졌다. 이제는 그 끝에 어른이 된 독수리의 빠진 깃을 모아다가 장식하기도 한다. 보통은 화살촉으로 쓰이는 물건이지만, 제 독수리의 것은 그냥 품고 있는 것으로 족하다는 듯이 안고 다녔다. 독수리는 현재 자신이 보살필 수가 없으니, 간혹 파발을 전하러 올 때만 데리고 있을 뿐, 그 이외는 항상 부족에서 돌보게끔 했다.
찬트Chant.
─ 찬트는 기본 소양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울족에서 찬트는 빠질 수 없는 증명이기도 했다. 찬트를 통해 자연의 섭리를 배우고, 찬트를 통해 가축을 다루며, 찬트를 통해 죽은 이의 삶을 위로한다. 이만큼 삶에 밀접해 있기 때문에, 말문이 틀 무렵부터 찬트를 가르치는 걸 미덕으로 삼는다. 샤와르는 그런 미덕을 충실하게 수행한 사람 중 하나였다.
─ 부족민들이 말하길, 그가 부르는 찬트는 참으로 성격과 달리 애절하다고 하더라. 그는 그 말을 들으면 그저 웃기만 했다. 본인 또한 찬트를 부르는 걸 좋아했으니, 힘들이지 않아도 혼자 흥얼거리며 부르는 걸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 그는 가끔 자연을 숭배하는, 애니미즘과 연관된 찬트를 부르기도 했다.
─ 찬트를 부르는 실력은 꾸준히 늘어나, 지금은 꽤 수준급의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부르는 경우는 극히 드물지만, 가볍게 부르거나, 음율을 빼두고 낭송에 가까운 형태로 부르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호불호.
─ 좋아하는 것은 특별나게 없다. 두루두루 좋아한다고 말해도 좋을 지경이었지. 그나마 콕 찝어서 말하라고 하면 초원이라고 한다. 자기가 나고 자란 곳 말이다. 또한 양이라고도 말했다. 목축견에게 도전하는 모양새가 귀엽다나.
─ 싫어하는 것에 대해 물으면 조금 기묘하게 웃기만 했다. 본인 말로는 딱히 없다고 답했다. 다만, 새까만 밤은 썩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빛 한점 들지 않는 어둠을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지 않겠냐면서 말이지.
─ 예전에 가르멜에서 먹었던 디저트가 마음에 들었는지, 그 뒤로 종종 디저트를 선호하게 됐다. 찾아서 먹을 정도까진 아니지만, 먹을 수 있을 때 먹어두자는 쪽에 가깝다.
그 이외.
─ 나이 먹고 느는 것은 두통이라며, 종종 제 주위에 약초를 한바가지로 피워놓고 그 속에서 연기를 즐겼다. 누가 보면은 궐련이라도 뻑뻑 피우는 줄 알고 오인할 정도로 피워두니, 목이 막히다며 도망가는 사람들도 수두룩했다. 본인은 그러거나, 말거나 약초 냄새가 좋다며 그곳에서 잠을 청했다.
─ 특정 주기가 되면 가만히 시간을 보낸다거나, 사색을 즐길 때가 있었다. 그 주기가 일정한 것으로 보아 특별한 날인 듯 한데, 이레를 가만히 생각에 잠겨 차분해지니 유독 정적과 함께하는 날이기도 했다.
─ 간혹 아그립냐에서 기록지 건으로 파발이 날라오거든, 읽기 귀찮다는 듯 한쪽에 쌓아두었다가 나중에 무더기로 밀려오는 파발을 보며 골머리를 썩혔다. 뒤늦게 내용을 읽으며 책상 앞에 앉아있는 모습을 보아, 자주 겪는 일인 듯했다.
─ 취미를 만들어 보라는 타인의 조언에 따라, 작은 목재를 이용해 조각상을 만드는 취미를 들였다. 솜씨는… 들쑥날쑥하지만 가끔 괜찮게 조각하기도 했다.
엔키두
그것이 있는 곳은 땅울림이 멈추질 않았지.
하지만 땅울림이 멎은 곳엔…
속성은 대지, 흙. 태초의 형태는 진흙으로 빚어진 인간이었을 터, 허나 지금은 감히 살아숨쉬는 인간을 닮은 모습을 표방하여 대지를 흔들고 식물을 자라게 하는 땅을 걷는 살아있는 진흙 인간. 하지만 사람의 입으로 그것을 인간이라 말해도 되는 걸까?
감히 인간인 줄 알고 접한 자, 불시에 찾아오는 땅울림 속에 땅을 갈라 새까만 지저 속, 자신의 뱃속으로 모든 걸 삼켜낸다. 소리없이 찾아온 균열이 땅 위의 것을 지저 속에 끌어들이니, 일종의 불상사에 가까웠다. 메꿔진 흙의 흔적 속에서 삼켜진 무언가를 찾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테니.
땅울림이 들리거든, 발밑에 납작 엎드려서 움직이지 말라.
네 한 걸음이 새까만 땅속에 매장될 토장土葬이 될 수도 있으니.
하지만 그것의 본질은 결국 재생이자 순환이다. 죽지 않는 진흙 인간. 흙은 모든 것을 자라나게 하는 토양이요, 생을 숨쉬게 하는 증거이니. 그것은 땅의 섭리를 비틀어 땅 위에서 자라날 수 있는 것들을 자라게끔 만든다. 죽어버린 땅에 자랄 수 없을 초목이 자라게 만들고, 평범한 초목을 독이자 약으로 만든다. 그러면서 땅 위에 있는 것들을 죽게 만들어 대지의 양분으로 삼아 또 다시 푸름을 재생시킨다.
그것 자체가 대지이자, 흙이자, 토양이니 땅의 소리를 듣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적어도 이 삶, 땅이 있고 토양이 있는 한 듣지 못할 목소리는 없으리라. 내가 내뱉는 목소리를 못 듣는 건 기이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것을 화나게 하지 말라.
땅이 꺼지는 것보다 무서운 건, 내가 발 딛고 서있는 땅이 나의 적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보편적으로 보이는 형태는 열살 안팎의 사람 모습으로, 그냥 보아서는 사람과 분간이 어렵다. 초목과 토양의 색을 띤 외형을 통해 어림짐작할 수 있을 뿐. 간간히 진흙이 말라 모래가 떨어지는 경우가 있었다. 흙을 밟아서는 발자국이 남지 않고, 바위 같은 것을 밟았을 때만 진흙 자국이 남았다. 본모습은 모든 게 진흙으로 이루어진 사람 형태로, 눈에 보이는 연령대는 의미가 없다. 간혹 작은 토기 인형 같은, 손바닥 만한 크기의 형태로 있기도 했다.
그것은 오랜 시간을 거쳐서 조금 더 인간다움을, 사람다움을 배워갔다. 가장 먼저 배운 것은 제 옆에 있던 맹약자의 표정과 언행. 그 뒤에는 마주치는 사람들의 것. 새싹이 돋아나듯 싱그러운 모습 뒤로 표정이 피어나니, 기묘하기 짝이 없다.
성질
─ 그것은 항상 제 정령사 곁에 있다. 어깨 위에 작은 토기 인형처럼 있다거나, 품 안에 들어가 있다거나, 혹은 발 근처에 머물며 있다거나. 어느 형태로든지 간에 제 맹약자 곁에서 떨어지지 않고 근처를 서성인다. 샤와르는 그것을 챙기는 게 익숙한 것처럼 굴며 친근하게 대했다.
─ 성격은 알 수 없다. 제 맹약자 말고는 도통 관심이 없는 듯 보였다. 애초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조차 판가름하기 어려웠다. 표정없는 얼굴로 바라보는 모습은 흡사 조각상을 보는 감상과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겠지. 맹약자는 그 표정을 더러 알아보는 편이었으나, 알아보기만 할 뿐 크게 반응하지는 않았다.
─ 가끔 그것의 몸속에서 땅울림 소리가 났다. 맹약자는 그 소리를 듣고 배고프냐는 말만 뱉었다.
─ 그것은 해가 떠있을 때를 가장 좋아했다. 해가 사라지면 여느 식물들이 그렇듯 잠을 자듯이 조용해졌다. 원래 조용하기도 했지만 더더욱 움직임이 없다고 해야 할까. 마치 둥지 속에 똬리 틀고 있듯이 얌전히 있으니, 맹약자는 그것을 석고상처럼 챙겨서 다녔다.
─ 그것은 가끔 식물 씨앗을, 잎들을 먹었다. 먹었다고 해야 좋을까? 텅 빈 몸속에 집어넣어 모았다. 가끔 맹약자가 손을 내밀면, 온전한 형태의 잎과 씨앗을 선물하듯 건네줬다.
─ 그것이 걷는 걸음마다 초목이 자라나듯, 맹약자인 샤와르가 걸을 때마다 초목이 피어났다. 보통은 작은 식물들이 주를 이뤘으나, 터만 제대로 잡혀있다면 하루 사이에 작은 나무 묘목이 자라나기도 했다. 보통은 그 자리에서 급속도로 성장했다가 시드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제대로 식물이 자라나기 위해서는 오래토록 한 자리에 머물 필요성이 있었다. 역으로 말하자면, 오래 머물수록 식물이 터를 잡는다는 소리였다.
엔키두의 동반자, 샤와르
운명의 순간
평소와 같이 유랑하던 하릴없는 날이었다. 그 때 이후로 몇 년 째였더라, 1년? 특별할 것도 없으며, 특별한 일도 일어나지 않을 날이었으나ㅡ 그날은 드물게 샤와르가 피로를 느낀 날이었다. 가장 먼저 이상을 느낀 건 엔키두였던 것도 같다. 저를 붙잡는 손에 왜? 라고 묻는 순간 눈앞이 흔들렸다. 아, 분명히 눈앞이 흔들렸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아니겠거니, 그런 가벼운 생각을 하고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쓰러진 건 그러고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스케네마로 향하던, 돌랄의 북쪽 언저리에서 있었던 일이었다. 서늘함이 느껴지던 곳. 뒤늦게 정신을 차렸을 땐, 흙으로 만들어진 움막 속에 있었다. 주위에 파릇하게 피어난 약초와 꽃이, 나무가 눈에 띄는.
범인은 너로구나. 옆에는 엔키두가 있었다. 얼마나 쓰러져 있었어? 아마도 만 하루. 샤와르는 일어나길 포기하고 얌전히 누워있었다. 하릴없는 순간이었다. 몸은 축축 늘어졌고, 과로로 무너진 몸 상태가 쉬이 회복될 것 같지도 않았다. 치료사가 쓰러지면 어떡해? 혼잣말로 투덜거려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샤와르는 꼬박 이레를 그곳에 머물러야만 했다. 나갈까? 싶으면 으슬으슬 몸이 떨렸다. 그것과 약속한 뒤로 그렇게 날씨를 타지 않았는데 춥다고? 쓰러지기 싫으면 얌전히 있어야지. 움막 입구에 서서 내리는 눈발도 구경하고, 엔키두로 인해 피어난 초목들을 구경하면서 시간을 때웠다. 힘을 발휘한다면, 힘을 빌린다면 너끈히 나을 수 있을 병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구태여 제 몸에 그런 수고를 낭비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 일종의 고집이었다. 제멋대로인 성미를 못 죽여서 짜증 내다가 타이밍을 놓친 그런 순간.
이레는 길고도 긴 시간이었다. 이레 동안 샤와르는 처음으로, 그 누구도 없이 엔키두와 단둘이서 시간을 보냈다. 그게 어떤 심경의 변화를 불러온 건 아녔다. 그저, 그 아득한 풍경을 보고 문득 든 생각이 있을 뿐이었다. 나는 참으로 조용하면서도 시끄러운 곳에서 살고 있구나, 하고. 결국 나는 내가 발붙일 땅에서,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구나─ 하고.
나는 이 대지를, 이 세상을 너무나도 사랑하는구나.
땅 위의 것도, 그 땅을 이루는 모든 것들을 빠짐없이 모두 다.
저를 바라보는 엔키두의 낯을 응시하면, 그 낯에 생기가, 표정이 깃들어 있다고 느낀 것도 그때였던 것 같다. 걱정했어, 라고 말하는 듯한. 이레째 날, 그곳을 떠나기로 했던 때, 다시 여러 곳에 발걸음을 떼려던 찰나, 샤와르는 제 손을 붙잡은 그것, 아이를 향해 내려다보았다.
아, 대답은 이미 알고 있었다.
내 영혼을 내어주며, 너와 약속하였던 그 순간부터 쭉.
그 시선에 서린 녹음을 보는 순간, 샤와르는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