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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지 말고 말해 보련? ”

외관

-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연 그의 가면이다. 귀한 금혈석을 조각내 만든 가면은 마치 사람의 두개골의 앞면에 긴 뿔이 단 형태이다. 그 위로 푸른색, 붉은색 염료로 기묘한 문양들이 빼곡하고, 뚫린 눈구멍 사이로 새빨갛게 동심원을 그리는 안광이 섬뜩하게 자리 잡는다. 머리 전체를 뒤덮을 수 있도록 뒤통수는 검은 털이 길게 늘어져 있는데, 자세히 보면 모두 실을 꼬아 만든 새끼줄로 촘촘히 박혀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모든 것이 그가 앙그루와나의맹약자임을 과시하고 있다. 사람에 대한 관념은 그 겉모습에 매우 큰 영향을 받으니, - 부족 내의 자신의 입지를 확실히 하는 용도로써 착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 여러 색으로 수가 촘촘하게 놓인 외투와 장신구들은 어지러이 화려하다. 반면 안에 입은 옷은 제법 단출한데, 신축성 있는 내의와 품이 넓은 바지에는 별다른 장식이 없다.

- 어깨의 문신은 더 퍼져 전신에 자리 잡고, 제 환상종과 같은 형태의 꼬리가 돋아났다. 또한 자연광을 비롯한 빛 아래서는 원래의 푸른 눈이 반짝이나, 광원이 사라지면 환상종과 닮은 눈이 붉게 발광할 뿐이다.

- 가면 아래의 얼굴을 구태여 숨기려는 눈치는 아니다. 머리색은 여전히 깊은 바다 같은 색이며, 홍채는 여전히 하늘을 담은 듯 빛났다. 머리카락은 한쪽으로 땋아 길이를 줄였는데, 풀어내면 허리까지 오는 길이이다.

- 천장이 낮은 집에 들어가면 허리를 숙여야 하는 정도로 거구가 되었다. 스스로 말하길 19살에 성장기가 왔다고. 오랜 단련의 흔적인지 아니면 제 환상종으로부터 짐승의 특성을 부여받은 것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어디 가서 시비 걸리지는 않을 풍채가 된 건 확실해 보인다.

맹약자

성격

1. 사려 깊은, 남을 챙기는

 

“얀은 여전히 얀이야, 적어도 우리가 보기엔 그래.”

16년이 지난 지금에도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성정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대화하며 희미하게 입가를 자리 잡는 웃음기나, 늘 곧게 상대를 응시하는 시선. 완곡한 어법과 당신의 동의를 구하는 말들. 잘못을 다그치다가도 곧 얼싸 안고 마는 마음씨도 여전히 그대로였다. 공감과 배려, 그리고 어린아이에 대한 조건 없는 보살핌은 그의 천성이니, 앞으로도 변함없을 것이다. 

 

2. 이해타산적, 울타리의 수호자

 

다만, 마냥 깎이지도 부서지지도 않기엔 너무 긴 시간이 흘렀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에 셈을 더해가고, 성인식을 끝마치고. 얀디누와가 의젓한 맏이가 아닌 어른의 반열에 오른 후부터, 그는 더는 조건 없이 적선을 행하는 어리숙한 이로 남지 못했다. 이득을 보면 손해를 보는 사람도 있고, 배부른 사람이 있다면 배곯는 이도 있다. 이 당연하고 잔인한 이치를 부정하기보다 손해 보는 이와 배곯는 이가 자신의 가족이 되지 않도록 하는 법을 배워갔다. 본격적으로 환상종과의 전쟁에 돌입한 전란의 시대와 맹약자라곤 저뿐인 작은 부족,  분열. 그리고 서게 된 위치. 모든 것이 그가 스스로 견고한 울타리를 자처하도록 했다. 그는 예나 지금이나 제 사람들을 위해 살았다. 

 

3. 현실적, 옹고집

 

참매의 깃이나, 처음 보는 바다의 빛깔, 새롭게 만난 이들에 대한 황홀경 따위를 읊는 일은 더는 없다. 무릎에 앉힌 아이들에게 얘기를 들려줄 때 정도가 아니라면, 그는 서늘하고 정적인 현실에서 살아가고 있다. 비관론자가 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주어진 상황에 수긍하는 부류가 되었을 뿐. 다만 객관성을 갖추게 된 현실 인식과는 별개로, 옳고 그름에 대한 확고한 사고관이 생겼다. 보편적인 도덕 관념에서 크게 엇나가지는 않았으나, 이를 타인에게도 강요하는 모습도 종종 보인다. 타인의 말을 끝까지 경청하다가도 종내엔 그렇다 해도 안됩니다.라는 말로 결론이 나고야 만다. 의식적으로 갈등을 피하고, 타인의 사고를 흔들기보단 자신의 관념을 돌아보았던 옛 모습과는 제법 결이 달라졌다. 이로 인해 갈등하거나 사이가 틀어진 이들도 종종 있었다.

아그 눈의 족장

수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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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색을 줍는 자들, 아그 눈]

 

- 식물, 혹은 광물로부터 염료를 제작하고, 또 그 염료로 직물을 염색하는 기술에 특화된 부족. 그 때문에 부족 고유의 언어로 ‘색을 줍는 자들’이라는 의미의 ‘아그 눈’이 부족명으로 굳어졌다고 한다. 과거 부족원 오십 남짓의 소규모 부족이었으나, 그 두 배 정도로 규모가 불었다. 아주 어린 아이이거나 이제 막 유입된 이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구성원이 양모와 식물 섬유를 이용한 직조, 염색, 자수, 실을 이용한 장신구의 제작에 능숙하고, 공용어와 부족 고유의 언어를 모두 사용할 수 있도록 교육받는다. 최근 10여 년간 다른 부족으로부터, 혹은 드물지만 다른 민족으로부터도 부족원을 받아 들여왔다.

- 계절에 따라 이목(移牧) 생활을 하는데, 주요 정착지는 돌랄 초원 중에서도 남단, 동시에 산과 인접한

동쪽 평원에 있다. 겨울이 다가오면 주요 정착지에서 지내며, 겨울 시기에 파종하면 봄쯤에 수확이 가능한 보리 혹은 부족에 의해 개량된 염료 식물을 재배한다. 동시에 가장 많은 직물의 생산, 염색이 이루어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후 풀이 자라나는 봄이 시작되면 주요 가축인 양을 유목하기 위해 정착지를 벗어나 이리저리 이동하며 유목한다. 또한 돌랄 내 타 부족의 거처를 순회하며 만들어낸 장신구, 직물, 옷, 염료 등을 다른 부족의 가축, 식량, 기타 필요한 물품들과 물물교환한다. 어떤 부족이냐에 따라 천차만별이긴 하나, 대체로 그들이 만들어내는 직물과 염료에 대한 타 부족의 선호도는 제법 높은 편이다.

- 금혈석 : 금혈석은 매우 무른 광물로, 광상은 표토 바로 아래 위치한다. 흔히 뿌옇고 누런 결정 사이에 붉은색 균열이 여럿 존재하는 형태를 띤다. 순도가 높다면 그 자체로 심미적 매력이 있고, 동시에 금혈석의 붉은 부분은 갈아 염료로써 활용할 수 있다. 그 색은 매우 선명하게 붉은데, 마치 변색되지 않은 혈액과 같다 하여 그러한 명칭이 붙여졌다 전해진다. 때문에 금혈석으로 만든 염료의 가치는 보통의 염료보다 훨씬 높다. 지금까지 유일하게 돌랄 내에서 금혈석의 존재가 알려진 광상은 부족 정착지로부터 가까운 산맥에 있기에, 아그 눈에게 매우 중요한 자원으로 여겨지고 있다.

 

[부족 사상]

 

“소유는 불평등을, 불평등은 투기를, 투기는 피를 부른다.”

- 여타 돌랄의 부족들이 그렇듯, 아그 눈 내의 공동체 의식은 매우 강한 편이다. 동시에 구성원 개개인 사이의 동등함에 대해 강조하기 때문에 사유재산의 개념이 희미하다. 모두가 배부르거나, 혹은 모두가 굶주리거나.

- 특이한 점이 있다면, 아그 눈의 부모 자식 관계는 혈통에 근거하여 구성되지 않는다. 아이들은 낳은 이들로부터 이름을 받은 자식이 아닌, 부족으로부터 아그 눈의 아이들로서 이름을 받는다. 성인식을 치르기 이전의 아이들은 모두 아그 눈의 자식이요, 어른들은 누구랄 것 없이 모두 부모이다.

- 족장이 존재하기는 하나 계승이 직계 자손에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얀디누와가 갓 스물이 되는 해 성인식이 치르는 날, 그는 어른들로부터 아그 눈의 역사와 족장이 되기 위한 조건을 전해 듣게 되었다. 그날은 얀디누와가 처음 찬탈자라는 멸칭으로 불리게 된 날이기도 했다.

 

[아그 눈의 찬탈자]

 

 다시는 이 곳에 발을 딛지 마세요. 용력 1024년, 그가 막 스물을 넘기고 성인식이 치러지던 날, 겨울밤. 그는 부족의 노인 하나를 정착지 쫓아냈다. 나이 지긋한 노인네는 얀디누와가 쥐여준 방한 외투와 식량, 땅을 디딜 지팡이 따위를 받고 그렇게 정착지를 떠나갔다. 떠난 이가 다시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초원의 겨울은 결코 홀로 걷는 노인에게 다정하지 않으니, 그 자리에 있었던 이들은 그가 자연의 곁으로 돌아갔음을 짐작할 뿐이었다. 죽음보다 더 고요한 침묵이 흐르던 그 자리에서, 얀디누와는 늙은이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기보다 그 자리의 어른들을 서늘한 시선으로 훑었다.

 

 떠난 이가 겨울바람 사이로 사라져버린 후, 얀디누와는 많은 사람이 모인 그 자리에서 당시의 족장에게 그 자리를 자신에게 넘길 것을 종용했다. 목과 얼굴에 주름이 빼곡했던 그는 아무 미련도 욕심도 없어 뵈는 낯으로, 얀디누와에게 차기 족장을 넘겼다. 그 과정에서 폭력은커녕 협박과 압력조차 없었으나, 그 자리의 모든 이들이 알고 있었다. 찬탈이며, 부정한 계승이었다. 하지만 평생 바늘과 실 따위나 만지던 이들이 맹약자에게 반기를 들 수 있겠는가. 그저 출처 모를 뒷얘기, 얀디누와는 부모 중 하나를 내쫓은 패륜아며, 맹약자의 힘으로 족장의 자리를 탐낸 무뢰배라는 이야기가 안에서 나돌다가, 밖으로도 흘러나갔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고향에서의 삶]

 

- 얀디누와는 자신의 바로 앞 손위 형제(지금은 그도 부모가 되었다)와 나이 차이가 제법 많이 나는 편이었기에, 몇 년 동안 맏이로 지냈다. 봄에서 가을까지 거주지에 남은 두셋 정도의 노인들은 제외하고는 모두 양을 유목하러 떠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동생들을 보살피는 것은 그의 몫이었다고.

- 맏이라고 한들 그 또한 아이일진대 싫은 소리 한 번 하지 않았던 것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행해진 교육뿐만 아니라, 그가 진심으로 동생들을 가족으로서 사랑하기 때문이다. 

- 저가 마지막으로 맏이로서 돌보았던 가장 어린 동생이 열여섯이 될 정도로 시간이 흘렀지만, 그의 형제였던 이들은 여전히 그를 ‘얀’이라 불렀다. 그 또한 그 애칭을 좋아했다.

- 이제는 아그 눈의 어른, 즉 부모로서 아이들을 여럿 돌보고 있다. 다만 망각을 우려해 누군가와 부부를 맺는 일은 늘 거절해왔다.

- 반가운 얼굴이 손님으로 오는 날에는 늘 입구로 나가 가장 먼저 맞이하였다. 몇 날 며칠을 묵고 가든, 부족함은 없는지 하루가 지날 때마다 물었고, 떠날 때는 늘 제가 지은 옷이나 장신구 등을 선물로 주곤 했다. 


 

[호불호]

 

- like : 머리를 땋아주는 것, 푸른 색, 장신구, 동생들, 가르멜에서의 인연 그러니 그는 늘 당신을 환영할 것이다.

- dislike : 이유없는 악의, 변명, 맹신

 

[수호자로서]

 

- 얀디누와가 수호자로서 환상종으로부터 받은 힘은 유연함과 뚫리지 않는 가죽. 창칼을 막아내는 가죽은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을 지키고, 유연함은 비단 관절의 움직임에 통용된 것이 아닌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신체 변화를 유도하는 힘이 된다. 수호자인 만큼, 신체 말단을 앙그루와나와 동화하는 것도 가능하다. 주술적인 행위 또한 스스로 행할 수 있게 되었다.

- 전신에 걸쳐 나타나는 문신은 소환진이다. 자세히 보면 앙그루와나의 얼굴에 나타나는 문양과 비슷한 것을 알 수 있다.

- 주위의 광량에 따라 형태가 변하는 눈을 가지게 되었다. 그로 인한 능력으로, 아주 미세한 빛이라도 존재만 한다면, 어둠 속에서라도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


 

[16년간의 행적]

 

1. 가르멜 붕괴 직후

 

 용력 1021년 가르멜이 붕괴한 후, 얀디누와는 곧바로 자신의 고향으로 향했다. 환상종과의 전쟁이 본격화되었으니, 맹약자가 없는 부족들은 단지 고달픈 정도로 끝나지 않을 어려움이 생길 터였다. 무엇보다 오래 보지 못한 동생들을 다시 보고 싶다는 마음이 앞서 정착지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렇게 보고 싶어 했던 세상을 등지고 반대로 걸었으나, 후회는 없었다. 언젠가 기회가 생긴다면. 그때라도 훌쩍 떠나 베델의 땅 어디에든 제 족적을 남기겠노라, 그리 마음먹었었다. 그의 성인식을 치러지기 전까지는 지금까지와 별반 다르지 않은 맏이로서의 삶을 이어나갔다. 그동안 환상종의 습격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맹약자의 힘으로 막아내기 어려운 정도의 전투는 드물었다. 아슬아슬하게 지금까지의 평온이 유지되고 있었다.

 

 용력 1024년 그가 스물이 되는 해 겨울. 그의 성인식이 열리는 날, 그는 아그 눈의 족장이 되었다. 모든 것이 변했다.

 

2. 족장이 된 후

 

족장이 된 얀디누와는 아그 눈의 새바람 혹은 피 바람을 불러올 이, 둘 중 어느 쪽으로든 불렸다. 그가 차기 족장의 자리를 받아내는 자리에 있었던 아그 눈의 몇몇 어른들은, 그의 욕심이 아그 눈을 파멸시킬 것을 통탄했으나 실상은 꽤 달랐다. 일부를 제외하면 아그 눈의 사상과 전통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다만 기존의 아그 눈은 유목 중 타 부족과 물물교환을 하던 것과 혼가로 인한 타지인의 유입 등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세상과 교류할 일이 전무했던 부족이다. 그는 폐쇄성이 매우 짙었던 아그 눈을 시대 흐름에 적응시켰다. 환상종의 습격으로 부족을 잃은 부랑자와 타민족 피난민들을 받아들이고, 대외적인 교역을 목적으로 하는 대륙 공통 화폐를 수용하여, 타 부족 혹은 민족과의 정기 교역로를 뚫어 생활이 제법 안정되었다. 또한, 귀룡과 환상종에 대항하는 돌랄의 부족 연맹에 힘을 보태며 환상종에 대한 연구 결과들을 공유받았다. 젊은 부족원들이 단지 길쌈질이나 하지 않도록 부족 연맹의 연구 인력이나 정보원으로 차출하는 등의 지원도 있었는데, 그들 중엔 그가 아끼는 동생인 키누도 포함되어 있다. 다만 전쟁에 대한 병력 지원은 지진 부진했다. 그도 그럴 것이, 불어나보아야 여전히 적은 인원에, 부족 문화가 호전성과는 거리가 먼지라 병력으로 차출될 인원은 사실상 저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3. 전쟁 참가

 

이러나저러나 족장이 된 이상, 제 몸을 제 의지만으로 굴리기는 힘든 입장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에 참여하여 맹약자 동포들을 돕고 싶다는 마음은 늘 있었으나, 참전 횟수로 따지자면 손에 꼽을 정도뿐이다. 부족 연맹이나 국가, 혹은 민족 연합이 주도하여 대대적으로 도움을 요청한 대규모의 난전이었거나 혹은 아그 눈의 정착지로부터 가까운 곳에서 전투가 벌어졌을 경우. 그마저도 대가를 요구하거나,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 부족원들의 안위를 보장해주겠다는 약조를 받아낸 경우에만 움직였다. 그 외의 무조건적 원조를 바라는 요청들은 모두 거절해왔다.

크리쳐

앙그루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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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의 천구가 모두 별빛으로 수놓아도 잠이 오지 않았던 한 아이가 똘망똘망한 눈을 빛내며 얼굴을 덮던 담요를 걷어낸다. 졸리지 않은데 밖에 나가면 안 돼요? 불만스럽게 입을 비죽이는 아이가 혹여나 몰래 밤하늘 아래를 거닐지 않도록, 어른들은 입을 모아 겁을 주었다. 달빛마저 비치지 않는 밤에는 절대 밖으로 나서선 안 돼. 커다랗고 반짝이는 이빨과 올빼미보다 밝은 눈을 가진앙그루와나가 네 모든 소망을 삼켜버릴 거야. 충고를 시작으로, 욕심쟁이 크누고타와 앙그루와나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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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그루와나는 북슬북슬 거리는 검은 털로 뒤덮인 짐승, 얼굴은 근육과 가죽 없이 하얀 뼈가 드러나 마치 탈처럼 보여. 그 위로 여러 색상의 기묘한 모양의 문양들이 빼곡해. 짐승보다는 사람의 치아에 가까운 평평한 이빨 틈새로 기다란 혀가 날름. 움푹 팬 눈두덩이 뼈 안으로 빙글빙글, 빨갛게 빛나는 큰 눈이 들어찼지. 얼마나 크냐고? 어떤 이는 집채만 하다고, 어떤 이는 주먹만 하다고도 해. 또 누군가는 발굽이 있다고도 하고 누군가는 날카로운 손톱이 있다고도 하지. 변덕스러운 만큼 제 몸체도 마음 가는 대로 바꾸는 거야. 

하늘과 대지 사이 어떤 불순물도 없이, 지평선만이 펼쳐지는 초원 아래서는 누구도 쉬이 숨지 못해. 하지만 이 간악하고 영민한 짐승은 가느다란 나무 사이에도, 빈약한 바위틈도 아닌 밤에 숨어든단다. 초원의 키 작은 풀잎들을 감싸던 달빛마저 사라지는 삭이 오면, 앙그루와나는 별빛을 나침반 삼아 나아가는 이의 뒤에 따라붙지. 나그네 크누고타, 누구도 깨어있지 않은 고요함을 틈타 봇짐 가득 메고 달아나는 욕심쟁이! 그가 바삐 걸음을 옮기다가 어느 순간부터 깨닫게 되겠지. 북극성이 어디 있지?

별을 나침반 삼던 발걸음은 방향을 잃고. 하늘의 별이 사라진 것이 아니야. 무언가 저로부터 하늘을 가리고 있다고! 알아차린 후에는 이미 늦어버리고 말았지. 앙그루와나는 검은 털 속에 감춰 놓은 하얀 이빨을 꺼내 그의 머리부터 집어삼켰단다. 꿀꺽. 밤이 지나고 지평선에서 뜨거운 태양이 떠오를 때쯤, 다행인지 불행인지 크누고타는 제 두 다리로 걸어 마을로 돌아왔어. 그는 그 후부터 음식을 탐하지도, 빛나는 돌에 눈독 들이지도 않았단다. 검은 짐승이 그의 영혼 대신 욕망을 가져가 버렸거든. 사람들은 혀를 끌끌하며 속닥거렸어. 앙그루와나가 배가 불렀던 모양이지, 장난만 치고 돌려보낸 걸 보면.

성질

앙그루와나는 장난을 좋아하는 어린아이와 같다. 간악하고, 교활하며 동시에 순수하다. 언어를 모방하여 의미를 전달할 수 있지만, 그 맥락은 이성과 논리, 혹은 법칙과 같은 일직선의 길을 따르지 않는다. 구불구불하거나, 혹은 길이 끊겨있고, 심지어는 하늘을 향하고… 변덕스럽고, 그렇기 때문에 자유롭다. 짓궂은 장난으로 제 맹약자를 괴롭히거나, 그가 홀로 있을 때 말을 걸어오는 것은 변함이 없다. 다만 그가 전하는 불완전한 문장 속에 종종 원망 어린 단어들이 끼어있곤 하다.

그나마 오랜 시간 아그 눈 부족이 이 짐승과 공존하고 동시에 위협받으며 알아낸 습성 중 하나는, 앙그루와나가 인간의 욕망을 파먹는 것을 선호한다는 사실이다. 이미 누군가를 먹어 배가 부를 때에 한해, 희생양의 영혼을 송두리째 취하는 대신 욕망만 파먹고 돌려보내는 일도 있다. 비유하자면 음식의 가장 맛있는 부분만 먹고 버리는 것과 같을지도. 하지만 얀디누와와 약속을 체결한 후부터는 이러한 특성은 사라진 듯하다. 이유는 불명.

그가 막 맹약자가 되어 가르멜로 향했을 때, 얀디누와는 앙그루와나를 불편하고, 또 불쾌한 존재로 여기고 있었다. 환상종이 자연의 일부로서 생과 삶의 순환에 일조하는 이들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지만, 이해하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자신과 가족의 영혼을 아가리에 집어넣으려 한 짐승. 그 제 속을 들여다보는 듯한 새빨간 눈을 보면 모종의 혐오감이 스멀거렸다. 하지만 16년이 지난 지금, 앙그루와나와 그의 맹약자는 어떤 이유로든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상태이다.

앙그루와나의 악우, 얀디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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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순간

저를 돌보던 부모 중 하나를 내친 파륜자. 동시에 그가 아그 눈의 족장으로 선언된 날. 보리의 파종이 끝나고, 문틈 사이로 흘러오는 바람에서는 옅은 온기가 느껴졌다. 곧 기다리던 봄이 올 터였다. 하지만 그는 유목을 나갈 채비를 하지 않았다. 나갈 수 있을 리 없었다. 그저 멀리 무릎 나간 노인이 떠나간 자리를 죽 응시하다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앙그루와나.

그를 부르는 목소리에는 채 가시지 않은 옅은 노기가 남아있었다. 하지만 그의 환상종을 향한 감정은 아니었다. 곧 식어버릴 잔열. 호명된 것은 어느새 제 눈앞에서 커다란 짐승의 형상을 하고 서 있다. 말로 헤아리기 힘든 복잡한 감정을 그에게는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저를 들여다보는 듯한 저 눈도 더는 불쾌하지 않았다.

부연도 꾸밈도 없었다. 그저 그것이 제게 건넸던 문장에 대한 답과 제 영혼은 내어주기로 했다. 그 대가는 여정이 끝날 때까지 끊임없이 걸을 다리와 바른길을 찾을 눈, 양들을 이끌 목양견으로 받아 갈 테니.

네가 정말 나를 사랑한다면 도와줘. 

“ 나는 이 땅의 모든 것을 사랑하고 싶어. 지루한 것들도, 너마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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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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