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휘장.png

“  예까지 걸음한 이유 무엇입니까. ”

펜을 꺼내 든 자가 그에게 이름 적는 법을 묻는다. 

고민 어린 손길로 선 한 획 그어내리는 소리가 들리면

청년은 대답한다.

"나의 이름, 이미 다 적으셨습니다." 

투 난 성장전신.png

외관

설원의 거센 바람에 색 없는 천자락이 나부낀다. 추위를 알지 못하는 듯 걸친 얇은 옷가지와 그 아래로 드러나는 앙상한 팔다리. 본디 사람의 얼굴이 있어야할 자리에는 빛바래고 금이 가 기이해진 몰골의 가면이 있다. 결코 작은 키가 아님에도 광활한 평원 위 인간의 형상은 한없이도 미약하다. 흩날리는 눈발 속에서 금방이라도 고꾸라질듯 위태로운 걸음걸이에는 짙은 애처로움이 있다. 허나 연민은 그에게 무의미하다. 그는 17년의 세월을 멈추지 않고 걸어왔으며, 뒤이을 억겁의 세월 또한 그리 걸을 것이다. 순백색의 장대한 짐승 옆 흔들리는 인영을 본 어떤 이가 탄성을 내지른다. "백의망령이 나타났다!" … 

맹약자

성격

{출가자의 삶}

[ 고요함 / 예민함 / 변덕스러움 / 독불장군 ]

미욱한 중생이 도를 닦아 깨우침을 얻고자 하니 역경이 끊이지를 않는다.

 

홀로 은둔하여 지내기를 수 년, 어릴적 그 성질 누그러질 법도 했으나 웬걸, 청년은 그 어느때보다도 안하무인에 독불장군이 되어 돌아왔다. 보통의 사람은 상처조차 입히지 못할 몸으로 환상종과 홀로 싸워가며 살아오느라 이러다 저가 다칠 수도 있겠다 생각하며 타인의 기색을 살피던 것 마저 더는 하지 않게 된 탓이다. 저가 싫다면 싫은 것이고, 좋다면 좋은 것이다. 상대 기분이야 알아서 무엇하는가. 어차피 오래 볼 사이도, 서로 기억할 아니거늘. 그러니 저가 타고 나기를 예민하여 눈치가 좋은 것도 사람을 대할 적에는 소용이 없는 것이다. 아니, 그를 넘어 제 직감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있었다. 그렇게 그는 어딜 가서든 툭 튀어나온 돌이 되었고, 부외자를 자처했다.

 

그러면서 그 종횡무진함의 전반에 깔린 감성이란 인생이 무상하다는 깨우침이니 날이 가면 갈 수록 행동이 기이해지는 것이었다. 어느 날엔가는 제 묫자리를 보고 온 노인마냥 모든 것이 덧없다 염불을 외더니 또 그 다음 날에는 사람 하나를 살리며 당신 내가 아니어도 살테면 살았을거라 했다. 설산을 따라 걷다가 별안간 공을 울려 설산의 주민들이 혼비백산을 하도록 하면서도 한 마디 설명 하지 않았다.  인류의 구원자 맹약자가 되어서는 저가 환상종임에 틀림없다는 터무니없는 음해에도 일절 상관하지 않으니 어찌본다면 모든 맹약자들의 인식에 먹칠까지 하고 있는 격이다. 당연하게도 그 마저 투 난은 신경쓰지 않았다. 

 

그리곤 일순 죽은 듯 고요해졌다. 저 서 있는 땅에 뿌리 내린 나목이 되어 어떠한 것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짧게는 수 분에서 길게는 며칠까지도 그렇게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며 목석마냥 서거나 앉아있었다. 자꾸만 이러니 안 그래도 제대로 된 식사 한 끼 하기 어려운 설산에서 등가죽과 뱃가죽이 맞닿을 만큼 삐쩍 말라버리고는 말았다. 이제와 보니 그가 설산의 환상종이라던 소문은 음해가 아닌가 보다. 눈보라 치는 날 밤 나부끼는 그의 앙상한 인영을 봐버리고만 어느 가여운 조난자의 눈물겨운 목격담에 가깝겠지. 그가 저런 행동을 반복하는 진위야 그 스스로만 알 테지만 혹자는 그가 명상을 하는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무직

수호자

설산 위 백색 옷을 차려입은 사람이 서있는 것을 본다.

눈을 감았다 뜨면, 형상은 온데간데 없다.

눈밭에서 일어난 회오리 바람을 착각한 것이다. 

틀림없이… 

—Pngtree—alchemy mysterious sheep head sun_6294418.png

기타

[ 마코르 산맥 :: 최북단의 이야기 ]

발 닿는 것 만으로 죽지 않는 곳이라면 어디든 터전을 잡고 살아가는 것이 사람이다. 가나안, 인간종의 출입이 허락되지 않은 그 낙원에 지평선을 맞대어 가히 귀룡의 업화와 가장 가까운 곳이라 할 수 있는 스케네마의 최북단, 국경을 지키는 영주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곳. 사시사철 눈보라가 몰아치는 이 깊은 설산에서도 사람은 살아간다. 대부분은 제 이름 앞에 떳떳하지 못하거나, 종교적 이유로 속세와의 연을 끊고 설산에서 수행하기를 자처한 이들이다. 스케네마, 혹은 대륙의 이방인이라 불리는 자들. 그런 이들이 서로의 온기에 의지하거나 냉담함에 불신하며 저들만의 이야기를 쌓아가는 동안에도 눈 내리는 설산은 모든 소리를 삼킨듯 고요하기만 하다. 귀룡에 대한 인간의 선전포고 이후 가나안에서 내려오는 환상종들에 의한 절멸이 선연하던 적도 있었으나 아직은 그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 가까스로, 정말 가까스로.

 

[환상종 :: 백의망령의 전설]

 "이 땅에서 목숨 부지하고 싶거든 공 울리는 소리가 들릴 때 모든 문을 걸어 잠그고 고룡께 기도하라."

 

그건 나찰이다, 아니 창백한 말의 기수였다,  창귀가 틀림 없다, 구울을 알아보지 못하느냐… 목격자들 가운데에서도 의견이 분분하여 결국 그건 백색 옷을 입고 기이한 가면을 쓴 망령이었다는 사실에만 한데 모여 맞장구를 칠 수 있었다 한다. 그렇게 대륙의 최북단, 마코르 산맥에 '백의망령'이라는 환상종이 출현했다는 소문이 약 7년 전을 기점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망령이 모습을 드러낸 곳에서는 머지않아 환상종의 출몰이나 눈사태, 태풍 등 인간이 어찌할 도리 없는 재해가 일어나니 이를 불길한 징조로 여기는 것 또한 당연지사. 그가 산등성이 너머로 걸어올 때면 텅, 텅 하고 모골이 송연해지는 철대 소리까지 울렸으니 사람들은 즉시 저 하던 일을 멈추고 집 안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구는 것이 이제는 일종의 불문율 까지 되었다. 그러나 마코르 설산의 주민들은 이 환상종에 대한 공포에 떨면서도 퇴치를 꾀할 수는 없었다. 만년설이 뒤덮인 산맥에서 순백의 망령과 그의 동행을 찾는 곤혹스러운 일을 위해 선뜻 파견될 병력도 마땅치 않거니와 그들 대부분이 제 이름조차 떳떳이 말할 수 없는 이들인 탓이다. 그렇게 큰 타개책 없이 여러 해가 지나고 이 기이한 환상종에 대한 전설이 날이 갈수록 자라던 와중 또다른 소문이 퍼지기 시작한다. "들으셨소? 지난번 살아돌아온 조난자가 백의망령의 도움을 받았다더군."


 

[ 맹약자 :: 투 난의 기억 ] 

한 명의 사람이 그리 말했다 기록하십시오.

 

가르멜의 붕괴 이후 어린 맹약자들이 각지로 흩어지고 수 년간 투 난은 다시 한번 대륙을 방랑했다. 거친 파도가 맞부딪히는 케렌의 해안 절벽에서 바람결에 흩어지는 아그립냐의 사구, 눈 닿는 곳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는 돌랄의 대지와 병사가 흘리는 피마저 얼어붙는 스케네마의 설원까지 그의 발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렇게 만나는 자마다 책 한 권에 담긴 그림을 보여주며 이 장소, 이 사람이 누구인지를 아느냐고 물었던 것을 기억한다. 대답을 들으면 다시금 길을 떠났고, 듣지 못했다면 또 다음 사람을 붙잡아 물었다. 이 눈에 띄는 행색의 맹약자와 그의 곁을 지키고 서는 짐승의 이야기가 퍼질 때면 그를 구슬려 자신의 세력으로 들이고자 하는 이들도 꾸준히 등장하였으나 개중 투 난과 함께하는 데에 성공한 무리는 없었다. 저 할 일이 없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으니 인류의 구원자라는 말이 저 치에게는 가석하다는 웅성임을 듣는 것도 예삿일이 되었다. 

-

아홉 해 동안 걸음 닿지 않는 땅 남겨두지 않을 양 굴더니 7년 전 어느날 돌연 그만 두었다. 나 이만하면 되었다고. 그렇게 투 난은 수 천 수 만번을 넘기며 너덜해진 책장을 다시 봉인하고, 북녁으로 향했다. 수 일을 걸어도 사람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설산에 제 터전을 두었고 어디든 오래 머무는 바 없이 산맥을 따라 무소와 함께 걸었다. 이따금 외딴 맹약자를 추격하는 환상종들도 있었다. 이에 투 난은 때로는 맞서 싸웠고, 때로는 새하얀 풍경 속으로 사라졌다. 이토록 오랜 세월을 홀로 살아남은 것 또한 기적이라는 말에 그는 담담히 대답할테다. “그러니 나 내일 죽는다 해도 기이할 일 없지 않겠습니까.”

-

그렇게 꽁꽁 숨어 은둔하였는데도 1037년의 파발은 맹약자 투 난에게도 날아들었다. 이에 응한 것은 본인의 말로는 예까지 찾아온 전령의 노력이 가상하여. 물론 사실인지 알 도리는 없다. 가르멜에서의 열흘, 그때에 만난 인연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양 구는 것은 절반은 알고서도 모르는 체 하는 것이요 절반은 워낙에 세월이 오래 흐른 탓이다. 그 옛날, 누군가의 말마따나 세월은 사람의 체취, 음성, 걸음걸이와 옷깃 스치는 소리 모두를 바꾸어 놓지 않던가. 

 

금강불괴

인간의 날붙이 정도가 통하지 않던 시절을 넘어 완연한 금강불괴의 권능을 다루게 된 지도 수 년이 지났다. 마코르 설산의 추위나 수 일을 곪은 배나 그에게 큰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은 매한가지. 저와 같은 권능을 지닌 맹약자나 환상종의 개입 정도만이 그의 몸에 상흔을 입힐 수 있으니 그 외의 경우라면 그는 더이상 사람이라 볼 수 있는지조차 불명확한 육신을 지녔다. 숱한 돌기가 난 피부는 충격 앞에 무쇠보다도 단단해졌고, 체온 또한 나무거죽을 만지듯 온기가 없었다. 눈 덮인 설산에 지팡이가 파묻혀 맑은 소리를 내지 못하면 제 발등을 찍어서라도 공명시키는 기행 또한 이 금강불괴의 몸 덕에 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범인의 공포를 상실한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 외

  • 주된 식단은 뭐라도 그때 먹을 수 있는 것. 저 알아서 자급자족하며 비위가 좋아져 편식을 하지는 않으나 구태여 먹을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진수성찬도 마다한다.  

  • 늘 들고 다니는 지팡이 속에는 빈 철대가 들어있어 알맞은 각도로 내리찍으면 수백리 밖까지도 퍼지는 울림을 낸다. 환상종과의 전투에 이용하며 낡고 변형되어 더는 예전같이 맑은 소리를 내지는 못한다 해도 투 난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 듯 했다. 지팡이 끝에는 뼈로 된 작은 함이 같이 바람에 흔들린다.

  • 예민해진 후각과 청각을 이용한 직감은 짐승의 방식이나 다름이 없다. 사람이 듣지 못할 소리를 듣고, 냄새를 맡아 다가올 재해를 예견하는 능력이 특출나다. 물론 그렇게 알아낸 것을 남에게 알리는 것은 별개의 문제. 

  • 여전히 가면을 벗지 않았다. 무소의 형상대로 깎은 것이라 하는데, 십수년이 지난 지금은 빛에 바래고 금이 가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하다.

일각수

투 난.png

사슴의 머리에 말의 몸통, 발은 코끼리를 닮았으며 멧돼지의 꼬리가 달려있다. 뿔은 해독과 치유의 힘을 지녔으며, 가죽은 철갑보다 단단하여 어떤 무기로도 꿰뚫지 못한다. 고갯짓 한 번으로도 견고한 벽을 무너트릴 힘은 사람들이 이 거대한 코뿔소를 경외하여 '일각수'라는 이명을 붙이게 하였다. 본체는 유목민들의 집 한 채와 맞먹는 크기나 필요에 따라 자신의 몸집을 줄일 줄 알았다. 

 

동물계 환상종임에도 인간을 적극적으로 사냥하지는 않았다. 인간들이 무리 지어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였을 때에만 그들을 짓밟고 영혼을 앗아갔을 뿐, 대부분의 시간은 홀로 조용히 지내며 보냈다. 한곳에서 오래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는 습성이 있으며 돌랄 남쪽의 산맥을 따라 이동한다. 속설로는 홀로 있는 사람에게 더 관대하기에 일각수가 다니는 길목에서는 함께 여행하던 이들도 잠시 헤어져 혼자서 이동하는 것이 관습이다. 

 

투 난은 단순히 그를 '무소'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그의 부족에서 늘 그리 불러왔던 탓이다. 

크리쳐

성질

제 맹약자만큼이나 조용한 성격이었다. 늘 투 난 곁에서 함께 걸었지만 둘 사이에 특별한 애정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투 난의 명령이 아니라면 먼저 움직이지도, 하물며 투 난에게 말을 걸지도 않았고 투 난 또한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면 무소가 하는 일에 간섭하지 않았으니 둘은 맹우보다는 동행자에 가깝다.

지능이라 한다면 가늠하기 어려웠다. 저 혼자 풀을 뜯거나 날벌레를 쫓을 때면 단순한 들짐승 그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눈은 늘 그 이상의 것을 말하는 듯하였다. 고요하게 바라보는 그 시선은 사람을 꿰뚫었다. 그를 마주할 때는 어떠한 거짓도, 허물도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막상 그는 투 난과 다를 바 없이 시야가 어두워 후각과 청각에 의지했으니, 이 또한 기이하다. 

사람의 말을 하지 않으니 그의 의사를 알아듣는 것은 투 난 뿐이다. 투 난 또한 무소와 대화할 때는 짐승 소리를 내는데, 때로는 사람이 듣지 못할 소리로 대화하기도 하여 말없이도 마음이 통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이와 별개로 무소는 사람의 말을 이해할 수 있는성싶었다. 혹은 대화 너머의 의중을 헤아리는 것이던가. 

무소와 같이 걷는 자, 투 난

메인 빛.png

운명의 순간

무소는 기억한다.

 

모래 섞인 바람이 불어오자 수 십개의 가면들이 일제히 흔들리며 애달픈 소리를 낸다. 청년은 그 앞에서 무릎을 꿇더니, 땅에 닿도록 고개를 깊이 숙인다. 달그락대며 서로 부딪히는 목가면의 소리를 제하면 풀벌레 우는 소리밖에는 들리지 않는 밤이다. 청년 또한 그 고요함에 동참하여 흐느끼는 소리 한 번을 내지 않더라. 울음을 참으며 헐떡이는 소리조차 그는 내지 않는다. 서늘한 공기를 들이쉬고 내쉬는 소리가 차분하다. 청년은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어떤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리 듯이, 그는 한참을 그리 꿇어앉아 있는다. 그러나 그가 기다리던 것은 결국 오지 않는다.

 

이윽고 청년이 다시 일어난다. 텅, 하고 맑은 소리가 들판에 울려 퍼진다. 풀 숲의 방아깨비조차 깨우지 못할 가벼운 걸음으로 그가 다가와 입을 연다. 

“ 이제 나 그 깨우침과 함께 걷습니다 ”

메인 빛.png
관계

관계

탑.png
버튼_맹약자프로필.png
버튼_환상종프로필.png
버튼_관계란.png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