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킁) ”
이름을 쓰는 법을 알려달라는 요청에 아이는 나뭇가지를 집어 들고 한참을 고민했다.
흙바닥에 선을 몇 개 그어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이것이 제 이름입니다."
"이건 아무 의미도 없는 낙서잖아."
"아뇨, 이것이 제 이름입니다."
외관
뼈대가 드러날 만큼 마른 팔다리와 그의 곁을 맴도는 위압적인 짐승은 아이를 실제보다 왜소해 보이게 하기에 충분했다. 붉은 의복과 가면, 짙은 고동색의 피부는 환상종을 떼어놓고 보더라도 시선을 끌었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제 가면을 고쳐 쓸 뿐인 그의 손길에서는 오랜 경험에 익숙해진 무심함이 돋보인다. 이런 그와의 첫 만남을 떠올리며 혹자는 이리 말했다. 저 홀로 다른 세상에 사는 듯했다고.
성격
{금수의 삶}
[ 고요함 | 솔직함 | 고집 ]
" ….. (킁)"
" … 뭐야, 쟤 지금... 내 냄새를 맡은 거야?"
"..........(킁킁)"
말수가 적은 것이 어딜 가서든 요사스러운 소문을 달고 다녔다. 어릴 적 부족에서 버려져 초원의 짐승들이 키웠다던가, 맹약을 할 때 정신이 어떻게 되어버렸다던가. 타인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는 듯 (애초에 타인의 시선을 볼 수 없으니 틀린 말이 아닐지 모른다) 저 좋을 대로 행동하는 것이 퍽 길들지 않은 야생동물 같다. 평지라면 어디에서든 누워 잠들었고 무심하게 풀을 뜯어 입에 넣었다.
제 환상종과 대화하는 모습은 이 소문들에 부채질했다. 얇은 소리로 울고 낮게 그르렁거리는 짓은 영락없는 금수의 행위다. 처음 보는 이들에게 종종 건네는 그만의 '첫인사' 또한 별 도움은 되지 못했는데, 그것이 무엇 인고하니 다짜고짜 다가가서는 상대의 체취를 집요하게 맡아대는 일이었다. 사람이 기겁하며 떨어져서야 꾸벅 고개를 숙이며 한 발짝 물러났다. 옆에서 주의를 주면 수긍하는 눈치도 없이 빤히 바라보듯 서 있는 게, 누구에게든 기묘한 첫인상을 줄 것은 확실했다.
이런 인상을 종합하여, 일반적인 사회생활을 겪지는 않은 듯 보였다. 사람들과 섞이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고, 기본적인 예의범절도 종종 삐걱거렸다. 말투는 꽤 차분하면서도 (어떤 이들은 그가 말을 한다는 사실 자체에 놀라기도 했으나, 낡았을 지언정 단정한 차림새를 보면 그에 대한 소문들이 사실이 아님을 쉽사리 알 수 있었다) 행동으로는 무례함과 기인의 범주를 스스럼없이 넘나드는 탓에 예상하기 어려운 것은 덤. 늘 쓰고 다니는 가면은 얼굴을 가려 의중을 파악하기 어렵게 했으니 결국 어느 무리에 있던지 아이는 툭 튀어나온 돌이었고, 부외자였다.
{독자의 삶}
[ 박학다식 | 예민함 | 거리감 ]
" 라반의 투 난입니다. 먼 길을 걸어 만나 뵙습니다."
" 우와악 갑자기 멀쩡하게 말 걸지 마!!"
" 갑자기 짖었다면 더 놀라셨을 텐데도요."
" 할 말 없게 하네… "
이야기를 나눌수록 아이는 사람의 태를 입는다. 짐승같이 행동하는 자가 짐승같이 생각하리란 법은 없다. 저 스스로 여행한 기간은 짧아도 알거나 들은 것이 많아 나이에 비해 영리했다. 천성이 섬세하여 감이 좋고, 작은 것도 놓치지 않을 만큼 꼼꼼하기도 하다. 그의 눈이 아니었다면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를 즐겼을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했다. 대신이랄 건 없지만 주워들은 이야기들을 읊을 때도 있었다. 라반의 소 떼를 부르는 노래, 위대한 데카나 전투의 전설, 옆집의 다로멘 난이 고백을 위해 연습하던 시조 (1 안에서부터 16 안까지 있다) … 한번 들은 것은 잊지 않을 만큼 기억력도 좋았다. 투 난이 남의 얘기를 떠벌리기를 즐기는 성격은 아니라는 건 많은 이들을 구했다.
그러므로 그가 무리에서 겉도는 건 다분히 선택적인 일일 것이다.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어쩌면 사람을 이해하기 때문에 거리를 두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을 또래와 놀기에는 너무 어른스럽다 여기는 그런 부류라던가. 무엇이든 간에 투 난은 사람들과 잘 섞이지 않았다. 그에게는 늘 적당한 거리의 선이 있었는데, 누군가 이를 넘어올라치면 저가 먼저 한 발짝 물러나곤 했다. 그를 무시하고 더 다가간다면 불쾌감을 대놓고 드러내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앙칼지게 쏘아 붙인다든지, 훌쩍 뛰어 도망친다든지… 그렇게 해서라도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투 난에게 중요해 보였다.
그러면서도 완전히 홀로 지내지는 않는 게 특이점이다. 그리 가깝지 않더라도 늘 무리 곁에 있곤 했다. 턱을 괸 채 오가는 이야기들을 듣거나, 변두리에서 사람들이 하는 것을 말없이 같이 하거나. 밀어내기보다는 맴돈다는 말이 더 적절해 보인다. 있어도 없는 것처럼, 없어도 있을 것처럼. 익숙하지 않은 이들은 시선 한쪽에 들어온 귀신같은 그 모습에 까무러치기도 했다. 투난은 그런 이들이 익숙하다는 듯 말없이 인사하며 무안함을 배로 만들었다. 그러다가 문득 홀로 떠나버린다. 보통은 한참 뒤에야 아이의 부재를 알아차렸다.
수호자
그의 깡마른 체구를 얕보아서는 안 된다. 그의 환상종과 같이 투 난 또한 인간을 초월한 근력과 금강불괴의 피부를 두를 수 있었다. 어떤 무기라도 상처 입히지 못하고, 어떤 장애물도 가로막지 못한다. 좋은 원석이다. 무엇을 왜 수호하고자 하는가를 깨우쳐야 할 뿐이다.
기타
{라반- 최남단의 사람들}
붉은 의복과 가면, 고동빛 피부를 유심히 보던 누군가가
말을 꺼낸다. "라반의 사람은 오랜만에 보는군." -이라고.
돌랄의 최남단, 산맥과 평야를 넘나드는 그 지역은 그곳에 기거하는 부족의 이름을 따 '라반'이라 불렸다. 산맥을 타고 넘어오는 황사와 자갈밭이 초원을 덮고 가축에게 먹일 풀도 넉넉지 않은 곳. 그런 황무지에 구태여 한 부족이 자리를 튼 것은 신념이라는 말만으로도 충분한 설명이 될 테다. 돌랄에 만 가지 부족이 있다면 만 가지 규율과 믿음이 있음으로, 고행길을 자처하는 부족이 있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산맥에 둘러싸인 지대에서 저들끼리 조용히 사는 만큼 그들에 대해선 많은 것이 미지의 영역이다. 세간이 아는 것들은 최소한의 교류를 위해 북쪽의 초원까지 올라온 몇몇 소수 부족민에 의해 전해진 것이 전부. 그런데도 불구하고 투 난의 출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면, 꽤 눈에 띄는 모습과 문화를 가진 게 사실인 탓이다.
라반의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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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반의 사람에게 가면을 쓰는 행위는 신성한 의식이다. 부족민 모두 각기 다른 형태와 크기의 가면을 지니며, 여행을 떠날 때나, 축제할 때, 장례를 치를 때 등 중요한 날마다 가면을 쓴다. 이런 의식 중에 타인이 가면을 벗기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스스로 가면을 벗는 것 또한 삿된 일로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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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은 의복 위에 붉은색의 외투, 혹은 천을 즐겨 입는다. 유목 생활을 하며 소와 염소를 키운다. 공용어에서 파생되어 나온 그들만의 언어와 그림문자 형태의 글자가 있다. 다른 부족과 교류하기 위해 올라오는 라반 족들은 두 언어 모두를 할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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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반의 샤머니즘은 개인의 운명과 미래를 점치는 것에 특히 중점을 둔다. 부족 내 샤먼의 지위는 족장보다도 높으며, 모든 부족민은 샤먼의 예언과 조언을 따른다. 이름으로 불리는 족장과 달리 샤먼은 "마 가르 난" 이라고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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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이름이 하나의 문장을 이룰 만큼 길고 복잡하다. 먼저 오는 두 음절까지만 호명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성은 없으며, 모든 이름의 말 하고 쓰는 법이 특별하다. 타 부족의 사람들은 그들의 이름을 배우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다.
어떤 의문에 아이가 대답했다.
" 아뇨, 제 이름은 투 난뿐인 것이 맞습니다."
시각의 부재
눈썰미가 좋은 자라면 투 난의 가면에는 눈구멍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테다. 투 난은 태어날 적부터 시력이 약했다. 가면을 벗더라도 빛의 방향만을 간신히 알아볼 수 있었다. 글을 읽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눈으로는 사람도 구분하기 힘들다. 그를 대신하듯 발달한 것은 청각과 후각이었다. 본래도 남들보다 배는 예민하던 것이 맹약 이후 곱절이 되어 이제는 일상에 아무런 지장이 없을 정도다. 공기 중에 스친 냄새만으로도 수천 걸음 밖의 사람이 누군지를 알 수 있었고 소리의 울림을 통해 물건의 위치를 파악했다. 되려 눈으로 볼 수 있는 이들보다 기민하다면 기민하다.
" 투 난, 오늘 저녁은 뭐지?"
" …우갈리에 양고기를 넣은 보즈, 차이 냄새가 납니다."
글 읽기
시력 탓에 당연하게도 쉬운 방법으로 글을 배울 기회는 없었다. 더군다나 라반 같이 외진 곳에 있는 부족에서는 일반적인 서적은 물론이거니와 맹인을 위해 쓰인 책을 얻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설령 배운다고 하더라도 부족 내에서는 큰 쓸모도 없었을 테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투 난은 느리게나마 글을 읽을 줄 알았다. 흙바닥에 낱말을 적어가며 차근차근 알려준 이가 있었던 탓이다. 손끝으로 느낄 수 없는 글자는 읽지 못하니 무슨 소용이 있겠냐마는, 단지 배운다는 행위 자체에 의미가 있었을지 모른다.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았냐 물으면 짧은 정적이 흘렀다. 선호하는 주제는 아닌 듯했다.
기록 없는 맹약자
그러나 투 난은 결국 종이에 적힌 활자보다 자신의 기억을 믿었다. 아무리 글을 배웠다지만 글 한 줄 읽는 것이 남들보다 배는 번거로운 것이 사실이다. 타인이 전해주는 것을 곧이곧대로 믿을 만큼 순진하지도 않았다. 글을 쓰는 것 또한 멀리했기에 투 난은 맹약자로서는 드물게도 자신에 대해 기록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뿐이랴, 타인이 저에 대해 적는 것도 상당히 탐탁잖은지 이름을 쓰는 법을 물어보려면 한차례 실랑이를 각오해야 했다. 망각의 저주에 관해 얘기를 꺼내도 기록이 있다고 제가 사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정도의 미적지근한 반응. 그리 말하면서도 끈으로 봉인된 책 한 권을 늘 지니고 다녔는데, 이따금 꺼내서 표지를 어루만졌을 뿐 한 번도 펼쳐본 적이 없는 듯했다. 그다지 궁금하지 않다는 이유로 남이 대신하여 읽도록 하지도 않았다.
"이름은 함부로 적지 않습니다.
무슨 이상한 각서를 줬을지 저야 모르지 않습니까."
"생각보다 엄청 타당하고 속세적인 이유군…"
{가르멜에 이르는 길}
처음부터 목적지를 가르멜로 두고 움직인 것은 아니었다. 북쪽으로 끊임없이 걷다 보니 도달했을 뿐. 무소와 맹약을 한 날로 투 난은 기약 없는 여정을 떠났었다. 최소한의 짐만 꾸린 채로 산맥을 오르고, 들판을 건너고, 사막을 횡단했다. 정해진 길은 없었다. 단지 걷는 것만이 그들의 목적이라 하였다. 그렇게 스케네마에 도달했을 때 즈음에야 가르멜이라는 이름을 들었고, 어떠한 변덕(전쟁이라던가 황금의 시대라던 가의 말들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이 들어 그 비밀스러운 지하 도시에 오게 되었다. 그때까지 돌랄의 최남단에서부터 1년을 멈추지 않고 움직인 참이었다. 쉬운 길은 아니었을 테지만 투 난은 여정의 다사다난함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는 편이었다.
그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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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는 이에게 한껏 다가가 냄새를 맡는 것은 확실히 보기 흔한 인사치레는 아니다. 투 난은 냄새와 발소리로 사람을 구분하기에 상대의 얼굴을 살피는 것과 같은 목적이다.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향해 서거나, 나무 지팡이로 땅을 툭툭 치는 버릇 또한 주변을 보다 확실하게 파악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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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약하다. 맹약으로 얻은 힘(치유의 권능은 다루지 못하기도 했다.)과는 무관하게 선천적인 체질이다. 잔병치레가 잦으며, 여독에 쉽사리 앓아눕곤 하여 종종 의외의 모습을 보였다. 먹는 양은 평범함에도 체구가 마른 것은 그 탓이다. 아픈 걸 드러낼 법한 성격은 아니기에 조용히 앓고 지나갈 때가 더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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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된 식단은 죽 같이 소화하기 쉬운 것들. 채식보다는 육식이 익숙한지라 육류를 선호하긴 하나 편식을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먹는 것으로 고생한 경험이 잦아 무엇을 받든 조심스러운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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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들고 다니는 지팡이는 아무 나뭇가지는 아닌 건지 보기보다 무겁고 단단하다. 머리 부분은 비어있어 부딪혔을 때 울리는 소리를 낸다. 앞을 보지 못하는 투 난이 장애물을 확인하기 위해 쓰는 동시에, 간단한 호신용 무기로도 쓰인다. 여행 중에 쓸 일이 많았는지 은근히 다루는 데에 알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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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 앞에서 가면을 벗지 않았다. 부족 밖으로 나와 여행을 하는 라반 족의 사람에게서는 흔한 특징이다. 무소의 형상대로 깎은 것이라 하는데, 조금씩 틀린 부분들도 보인다.
일각수
사슴의 머리에 말의 몸통, 발은 코끼리를 닮았으며 멧돼지의 꼬리가 달려있다. 뿔은 해독과 치유의 힘을 지녔으며, 가죽은 철갑보다 단단하여 어떤 무기로도 꿰뚫지 못한다. 고갯짓 한 번으로도 견고한 벽을 무너트릴 힘은 사람들이 이 거대한 코뿔소를 경외하여 '일각수'라는 이명을 붙이게 하였다. 본체는 유목민들의 집 한 채와 맞먹는 크기나 필요에 따라 자신의 몸집을 줄일 줄 알았다.
동물계 환상종임에도 인간을 적극적으로 사냥하지는 않았다. 인간들이 무리 지어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였을 때에만 그들을 짓밟고 영혼을 앗아갔을 뿐, 대부분의 시간은 홀로 조용히 지내며 보냈다. 한곳에서 오래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는 습성이 있으며 돌랄 남쪽의 산맥을 따라 이동한다. 속설로는 홀로 있는 사람에게 더 관대하기에 일각수가 다니는 길목에서는 함께 여행하던 이들도 잠시 헤어져 혼자서 이동하는 것이 관습이다.
투 난은 단순히 그를 '무소'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그의 부족에서 늘 그리 불러왔던 탓이다.
성질
제 맹약자만큼이나 조용한 성격이었다. 늘 투 난 곁을 맴돌았지만 둘 사이에 특별한 친분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투 난의 명령이 아니라면 먼저 움직이지도, 하물며 투 난에게 말을 걸지도 않았고 투 난 또한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면 무소가 하는 일에 간섭하지 않았으니 둘은 동행자보다는 서로의 그림자에 가깝다.
지능이라 한다면 가늠하기 어려웠다. 저 혼자 풀을 뜯거나 날벌레를 쫓을 때면 단순한 들짐승 그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눈은 늘 그 이상의 것을 말하는 듯하였다. 고요하게 바라보는 그 시선은 사람을 꿰뚫었다. 그를 마주할 때는 어떠한 거짓도, 허물도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막상 그는 투 난과 다를 바 없이 시야가 어두워 후각과 청각에 의지했으니, 이 또한 기이하다.
사람의 말을 하지 않으니 그의 의사를 알아듣는 것은 투 난 뿐이다. 투 난 또한 무소와 대화할 때는 짐승 소리를 내는데, 때로는 사람이 듣지 못할 소리로 대화하기도 하여 말없이도 마음이 통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이와 별개로 무소는 사람의 말을 이해할 수 있는성싶었다. 혹은 대화 너머의 의중을 헤아리는 것이던가.
약속의 계기
투 난은 기억한다.
장정 수십 명이 달려들어도 제압조차 하지 못할 짐승을 나무를 깎아 만든 창 하나와 돌팔매질로 쓰러트리려 한 적이 있었다. 바닥에 나뒹구는 몸과 울컥거리며 올라오던 무언가, 바닥에 흐르던 눅진한 액체, 천천히 젖어 들어가는 옷가지. 분명 하늘을 올려다보았을 터인데 빛 한 줌 느껴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아 달도 흐린 밤이었나보다.
깊게 울리는 땅을 통해 다가오는 짐승의 무게를 가늠한다. 코끝으로는 풀과 모래와 피가 뒤섞인 가운데 결코 잊을 수 없는 냄새가 짙어진다. 틀리지 않았다. 아이가 찾던 것은 이 녀석이다. 비릿한 맛으로 차오르던 목울대를 이번에는 다른 것이 틀어막는다. 일어서고자 몸부림쳐보지만 육신은 이미 그의 말을 듣지 않는다. 생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순간에 분에 겨운 울음소리만 꼴사납게 내질렀다.
그러나 짐승은 서두르지 않고, 육중한 걸음으로 그의 제물을 향해 한 걸음씩 천천히 다가올 따름이다. 분노와 흥분이 유지되는 시간은 짧다는 걸 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냥감이 천천히 공포에 물드는 모습을 즐기는 걸지도 모른다고, 아이는 찰나에 생각했다. 그러자 생각에 병들듯이, 그는 의심하여 두려움에 떨기 시작한다.
죽기엔 너무 어린 나이다. 이제는 죽어도 괜찮다고 여겼는데, 각오가 부족했나 보다. 힘도, 생각도, 용기도, 어쩌면 그 애정까지. 불꽃처럼 타서 사라지기엔 그 열기가 모자랐던 것이다. 남은 것은 잿더미도, 피어오르는 연기도 아닌 차게 젖어 썩은 장작뿐이다. 하지만 썩은 장작이라도 맹렬히 살고 싶다. 목숨만이라도 살려달라 빌고 싶다. 하지만 그 어떤 대가가 짐승을 만족시킬 수 있겠는가? …
이윽고 가슴을 짓누르는 짐승의 숨결에 아이는 글썽인다.
"제게는 저와 함께할 가족도 친구도 없으니
저 한 명의 목숨을 위해 드릴 수 있는 것은 저 한 명의 영혼뿐입니다."
그리고 무소 대답하기를.